의식적인 훈련 (Mindful Discipline)

Original post: May 3, 2019

사람은 훈련과 습관의 집합체이다. 이웃의 갓난아기가 어떻게 근육을 발달시켜가는지 생각해보면, 심지어는 목을 가누는 일 조차도 훈련을 요한다. 이 훈련은 1차 사회화 기관인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시작되며, 점차 2차 사회화 기관인 학교나 직장에서도 이루어진다.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반복적으로 어떤 훈련을 자신에게 시키고 있고,그로 인해 크고 작은 습관들이 몸에 베어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욕실로 가는지, 부엌으로 가는지, 아니면 거실 쇼파에서 삼십분 더 자는지는 그 부모, 오랜 룸메이트, 혹은 군대같은 환경을 기억해내며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 훈련과 습관의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마련이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훈련이란 곧 연습인데, 이는 그들 삶의 엄청난 부분을 차지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개인레슨 선생님들이 연습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학생들은 그대로 연습해서 새 근육을 몸에 붙이고 소리에 대한 감각을 키운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그 근육과 감각을 익히는데에 쓰고, 음악대학에 입학할 때 쯤엔 이미 연습 장인이다. 대학교 이후부터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더 많은 책임감을 부여하고, 이미 많은 연습방법을 거쳐왔다는 전제 하에 학생을 가르친다. 목표점에 있을 소리를 함께 빚어서 기억하게 한 후, 일주일동안 학생이 어떤 방법으로든 그 소리를 손과 귀에 습관화해올것을 기대한다. 선생님이 연습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경우는 학생의 지적 능력과 연주력에 반비례한다.

나는 중학생시절부터 따져보자면 이제 거의 십오년간 일주일에 한번씩 개인레슨을 받아왔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연습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연습하기 싫어 죽겠다는 소리는 한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끔 한 패시지가 잘 만들어져 기가 막힌 소리가 날 때 느껴지는 그 카타르시스는 쇼팽 에튀드를 무대에서 한톨 안틀리고 쳤을 때보다 훨씬 강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정말 가끔이었고 특히 박사생활을 시작하며 내 연습시간에 벤 습관은 전혀 건강하지 않은 것이었다. 반주일을 하며 얻은 파워초견을 내 독주곡을 배우는 데 적용 – 좋을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다 – 악보보고 겨우 끝까지 칠 수 있으면 그 주 연습은 성공이었다.

세상에서 자신을 훈련시키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어보인다. 나는 종종 옛날 선생님들의 지론을 나 자신에게 환기시켰다.

‘니가 이 곡을 레슨에 들고왔을 때 내가 할말이 뻔하지 않니? 그걸 생각하고 연습을 해봐’

‘될때까지 반복해서 다듬어’

‘메트로놈을 너의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들렴’

얼마전부터 bullet journal을 쓰기 시작한 나는, 그날그날 연습하고 발전시켜야 할 섹션들을 목록지어놓고 그 섹션에 쏟을 수 있는 시간까지 재 놓았다. 그리고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늘 나의 목록은 야심찼고, 늘 80%정도만 지워졌다. 하지만 그냥 80%를 매일 지운다고 생각하고 일주일 중 하루는 그걸 보충할 수 있는 시간으로 남겨놓았다.

이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연습시간은 깨달음이 없이 지루하고 단조로웠다. 아니 어쩌면 재미있고 다채로웠다. 내 상상속에서 나는 너무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며 멈추지도 틀리지도 않고 예쁜 프레이즈를 만드는, 연습실의 리히터이자 호로비츠였다. 실제 내가 만드는 소리와 손가락의 움직임을 유념하지 않고, 작곡가의 의도는 추정해보지도 않고, 건반위에서 반자동적으로 네마디 프레이즈를 바를 정자 그려가며 스무번 반복했다. 거기에 삼십분을 쏟은들 세시간을 쏟은들 좋은 음악이 나올리 없었다. 악보 자체가 어려운 경우, 음표가 익혀지지도 않았다. 참다못한 나의 할아버지선생님이 아주 점잖은 말투로 불같이 화를 내셨다. 1.5차 사회화 기관같은 개인레슨 선생님의 영향력은 참으로 놀랍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바쁜 하루 속에서 최대한의 시간을 끌어모아 피아노 앞에 앉아 있고, 저널까지 써가며 연습시간을 구성하고,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고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건강하게 먹고 체력유지에 힘썼는데 뭔가 중요한게 빠져있단 말이었다.

피아노 앞으로 돌아와 다시 연습을 해보았다. 문제와 해결책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나는 아무생각없이 연습하고 있었고 더 큰 인내심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강력본드로 막아놓은 듯한 귀를 억지로 열어가며 어떤 소리가 좋은지 비교해보고, 팔과 손가락의 동선을 상세히 관찰하고 이미 굳어버린 근육을 재정렬했다. 건반앞의 나 자신을 관찰하고 간섭하는 또다른 내가 되어 머리와 마음을 다스려야 했는데, 어느새 이 작업이 나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있는것을 발견했다. 단시간에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초견반주가 어느덧 습관이 되고, 이제는 보면대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진 핸드폰이 사사건건 정신을 휘저어서, 2분동안이라도 연습하는 나자신을 관찰할 수 있다면 정말 성공적인 연습이었다.

연습은 의식적이어야 한다. 베토벤의 느린악장을 칠때는, 원하는 소리를 찾고 그 소리를 만드는 손의 움직임과 페달을 찾아내는 연습, 쇼팽의 스케르초를 칠때는, 그 먼 도약을 타율 100%로 만드는 팔의 움직임과 나의 마인드셋을 찾아내는 연습, 그 움직임이 편해지고 습관이 될 때까지 온 팔과 귀를 다스려야 한다. 만만치 않은 양의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 연습이다. 네마디만 가지고도 두시간동안 할 수 있는게 연습이다. 생각하고, 듣고, 치고, 페달까지 컨트롤 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집중이 필요한데, 그 어느 소절도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8분 길이의 곡, 때로 30분 길이의 곡을 가지고 내 자신을 훈련시킬 생각을 하면 막막하기부터 한게 사실이다.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돌리는 연습이 제일 편하고 그래도 주어진 시간동안 뭔가 해냈다는 위안을 주기는 한다. 실상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건 생각없이 돌리는 이 손가락이라고 믿어온것도 있다. 하지만 머슬메모리는 양날의 칼일 뿐.

무대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 공간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이 엄청난 아드레날린을 만들어내서 그 어느 레코딩보다 반짝이는 음악을 연주하게 되지만, 연습실처럼 편하게 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 시공간을 준비할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기계적인 연습을 밀어내고 머리를 굴리고 귀를 열어야 한다. 집을 지을 때 수백장의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는 일을 반복해야 할 때도 있지만, 경첩의 아다리를 맞추고 덕의 효율을 생각하며, 동선과 인테리어를 미리 고려해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환상 속에서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착각 속에서 곡을 완성할 수 없다. 의식적인 연습은 실제 연주에 도움을 주는 요소들을 차곡차곡 쌓게 되고, 그 요소들이 쌓여서 무대에서 빛을 발할 때 작곡자와 연주자의 의도가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되며,연주와 연습에 관한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하게 한다.

’네가 이 곡에서 사랑하는 이유, 너를 이 곡을 치게끔 만든 부분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그걸 잘 전달하기 위해서 너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연습해야 하는거야. 니가 원하는 소리가 날때까지. 그래서 청중이 너를 그 소리 속에서 볼 수 있고, 너의 마음을 느꼈을때, 그게 바로 훌륭한 연주가 되는거야.’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우리 할아버지 선생님 James Tocco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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